국내 연고자로는 한달전 심장시술하신 8순을 바라보는 막내이모와 자손들.. 나머지
친척분들은 어르신들 작고 이후 왕래가 거의 없었다. 어머니 향년이 92세셨으니 모두가 피차 왕래는 어려운 입장들이었다.
한국에서 어머니 모신지 어언 3년여 나혼자였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느껴지는 막막함..
상주인 나혼자서 오롯이 해결해야하는 대사.
그때 검색사이트에 고이가 보였고,친절한
상담후 소망이 보였다. 안도감도 같이...
이어서 어머니 임종의 순간이 왔고,
그렇게 어머니는 인자한 표정과 함께
편안하게 소천하시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현실..
집에서 임종하셔서 119에선 병원 이송을 거부했고, 경찰관 두분, 조금이어 형사 두분이오셨다. 그리고 간단한 조서와 심문후에 어머니의 유해는 장례식장에 인도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구원자 김지훈 장례지도사가
나타났다.
처음 앰블런스 섭외부터 마지막 안부 전화까지 그분은 정중한 태도와 공손하고 온화한 말씨로 차분하게 나를 리드해 주셨다.
입관까지의 모든 절차도 그분의 성실과 정성이 보였고 차분하고 전문적인 진행으로 나를 안도하게 해주셨다.
말도 안되는 저렴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나의 슬픈 마음과 황망함과 조문객없이 치뤄야하는 민망함까지 다 헤아려 주셨고말없이 곁을 지켜 주셨다.
고급 리무진으로 연화장까지 에스코트하였고, 운구자가 없는 황망한 상황에서도 대기 운구차의 기사분들까지 섭외해주셔서 상주가 운구대를 잡는 참담함을 해결해 주셨다.
이제.
이 고마운 심정을 글로 옮기면서,
다시한번 그때로 돌아가면, 나는 또 주저없이 고이와 김지훈 장례지도사님을 선택하리라..
김지훈님 고마웠습니다.
무탈히 많은 복 누리는 남은 날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